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토니오 비발디 (문단 편집) === 기타 === * 비발디가 안나 지로와의 염문 때문에 베네치아에서 쫓겨난 후 "나는 사랑과 베네치아를 맞바꾸었을 뿐이다."라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는데 전술한 바와 같이 비발디는 베네치아에서 쫓겨난 적이 없을 뿐더러 이 말의 출처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설령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농담 이상으로 볼만한 증거는 없다. * 당시 베네치아에서 활약하던 극작가 카를로 골도니가 비발디에 대해 "비발디는 바이올린 주자로서는 만점, 작곡가로서는 그저 그런 편이고, 사제로서는 0점이다."라고 조롱했다고 한다. 이에 비발디는 골도니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로 응수했다. "골도니는 험담가로서는 만점, 극작가로서는 그저 그런 편이고, 법률가로서는 0점이다."[* 골도니는 원래 법률을 공부하는 법학도였으나 희곡 작가로 전직한 인물이었다.] [[키배]]를 벌이긴 했지만 골도니는 비발디의 오페라 대본 두 편을 써주는 등 같이 협력하기도 했다. * 하지만 작곡할 때를 제외하고는 손에서 [[묵주]]를 놓지 않았으며, 작곡을 하면서도 비발디 본인의 신앙심의 흔적이 나타나 있어, 그가 결코 사이비 사제인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또 그 때 베네치아는 항구도시라 이런저런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었고 그만큼 분위기가 많이 문란했다고 하니[* 당시 유럽에서는 "베네치아 사람들은 생애의 절반은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범죄를 저지르며 살아가고, 나머지 절반은 하느님께 용서를 비는 데 바치고 있다"라고까지 평하고 있다.] 비발디는 그 당시의 평범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실제로 이런저런 소문 때문에 그를 [[파문]]시키려는 세력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끝내 파문은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 다만 신실한 가톨릭 신앙 측면에서 같은 세대의 작곡가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대척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비발디는 [[사제서품]]을 정식으로 받았으나 신앙심이 약한데 비해, 바흐는 [[평신도]]에 불과했으나 신앙심이 매우 깊었다. 한편 사후 유명세가 덜하였으나 후에 재발견 된 점, 초상화가 [[인터넷 밈]]으로 자주 쓰이고 있는 점 등 비발디와 바흐는 공통점이 꽤 있다. * 바이올리니스트인 [[프리츠 크라이슬러]](F.Kreisler)가 비발디의 모작을 쓴 적이 있다. 크라이슬러는 처음에는 이것이 비발디의 실전된 작품이라고 대대적으로 [[언플]]을 했는데,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결국 이 작품의 진짜 정체는 그가 훗날 이 작품을 자신이 썼다고 실토하면서 밝혀졌다. [[https://youtu.be/QzS6pLTJivU|문제의 곡 듣기]][* 솔직히 엄밀히 말하자면 실제 비발디의 작풍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차이를 찾아보는 것도 나름대로의 재미.] 근데 사실 크라이슬러 이 양반은 평소에도 이것저것 자주 [[위작]]을 쓰곤 했었다고. [[프랑수아 쿠프랭]], [[아르칸젤로 코렐리]], [[주제페 타르티니]] 등 바로크 시대의 거장들 중에 그에게 봉변(?)을 당하지 않았던 인물은 없었다고 해도 될 정도다. * 현대 작곡가 [[막스 리히터]]에 의해 《사계》가 재작곡된 바 있다. [[https://youtu.be/8oYWfJuMGMA|전곡 듣기]] * [[CRAVITY|선배를 깍듯이 모시는 어느 아이돌 그룹]]의 [[정모(CRAVITY)|한 멤버]]에게 '선배님'으로 불린 적이 있다.[[https://twitter.com/bback_it_up/status/1402464255689990146?s=19|#]] * [[BIGBANG]]의 노래 [[봄여름가을겨울 (Still Life)|봄여름가을겨울]], [[꽃 길]]에서 언급되었다. * [[강원도]] [[홍천군]]의 리조트 [[비발디 파크]]는 그의 성인 비발디에서 유래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